숲속의 자본주의자 살면서 읽으면서 책 삶 기록

1. 저자 : 정혜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4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족과 함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시골에 들어갔다. 지금은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의 오래된 집에서 두 아이와 남편과 산다. 실개천이 흐르고 나무가 잘 자라는 넓은 땅에서 살지만 농사는 짓지 않는다. 도처에 자라나는 블랙베리와 야생초를 채취하고 통밀을 갈아 빵을 구우며 막걸리 누룩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는다.
정기적인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도 생존할 수 있는지 궁금해 실험하듯 시작한 생활이 이제 7년째를 맞았다. 평범한 일상이자 작은 실험이기도 한 삶의 모습들을 이메일에 담아 정기 구독 서비스를 운영한다.

기자답게 깔끔한 자기소개. 

2. 목차 

프롤로그 골수를 맛보는 삶

1장 제철에 블랙베리를 따는 삶
시골에서 자본주의 활용하기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농사꾼
생활비 100만 원
버릴수록 풍성해진다
무엇보다 기쁨으로 먹는 것

2장 어쩔 수 없이 살지 않기 위해 버렸던 것들
꿈이 삶을 가로막을 때
욕망에 항복하는 습관
그것은 나의 권리가 아니다
일단, 감사와 이해를 멈추다
가르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림질의 미니멀리즘

3장 돈 벌지 않는 나와 살아가는 법
스콘 대 발효 빵
참을 수 있는 가난
돈의 기쁨과 슬픔
우리 모두 폐를 끼친다

4장 숲속에서 내 이야기 찾기
세상의 모욕 앞에서 나를 지키는 시선
함께해야 나를 찾을 수 있다
소로의 시시하고 소중한 이야기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고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법
마당의 피아노

5장 투명해질 때만 보이는 것들
시간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
인간이 신에 가까워질 때
우리 옆집에는 태극기 부대가 산다
모든 것은 나를 속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누구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해질까
어떤 일은 내딛으면 이루어진다

에필로그 끝을 보며 지금을 사랑하다


3. 책 속에서

우리가 이 답을 찾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21쪽

친환경적인 농사는 없다. 농사는 원래 환경파괴를 기본으로 한다. (중략)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사슴과 토끼와 두더지와 민달팽이 덕분이었다. 무엇을 심어도 재빠르게 초토화시키는 녀석들이었다. (중략) 담을 치고, 약을 뿌리고, 철사로 망을 두르는 방법도 있었다. 이 방법을 포기한 건 환경오염 때문도, 돈 때문도 아니었다. 증오심 때문이었다. 이 동물들에 대한 증오심은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감정이었다. 도시에서 나를 피로하게 만든 무례한 인간, 층간소음, 비열한 상사, 경제적 빈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렬한 절망감이었다. 사실 이 동물들이 파헤친 작물을 돈으로 따지면 소소했다. 그런데도 이 동물들을 당장 죽여버리고 싶었다. 피가 머리 꼭대기로 몰리면서 관자놀이가 방망이질할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슴을 증오하며 농사를 짓는 대신 사슴처럼 살기로 했다. 야생 채집을 공부했다. 팔 만한 것을 경작하는 대신, 야생 상태의 텃밭을 꾸리고 채집을 하면서 먹고살아 보기로 한 것이다.
-25~26쪽
(농사를 한번 지어보면 안다.ㅎㅎ)

이 세상에 선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에 남지 않을 사소한 많은 행동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더 나쁜 세상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의 절반쯤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잠든 이들 덕분이다. 
-77쪽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책의 마지막 내용이라고 해서 찾아봤는데...제인 오스틴을 잇는 영국 여성작가인데... 고전에다가 두께가 장난아니다.ㅜ)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사상보다 더 재미있는 건 사후 역사 속에서 그의 명성이 변해가는 과정이다. 그는 정치권력도 탐하지 않고 시골에 살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음식을 즐기며 검소한 생활을 했고 질병의 고통을 당할 때는 이런 기쁨을 누렸음을 감사하며 견뎌냈다. 이런 삶이 진정한 쾌락이라고 했다. 욕망이 딱 그만큼이었으니. 하지만 그는 살아있을 때부터 최소 몇백 년동안 공격과 비난,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쾌락주의의 아이콘이 되어 방종한 섹스와 무절제한 생활을 한 결과 병에 걸려 죽은 사람으로 조롱당했다. 
-82쪽
(나도 그렇게 알았다. 쾌락주의. 향략을 즐겼다고. 욕망에 항복하는 습관에서 인용.)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는 문과와 이과의 직업 안정성 전망에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 어른들은 이과생은 그냥 기술 실무에 모물고, 더 높은 출세나 기업 경영은 문과생들이 한다는 조언까지 했다. 지금은 고대 전설같은 이야기다.
-89쪽 
(그땐 그랬구나. 지금은 역시 이과. 인정.)

헨리 소로는 <월든>에서 연장자들로부터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듣거나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한다. 
-104쪽
(뜨끔)

나의 성장, 나의 의미, 나의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일은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세상의 속도와  다른 방식의 성숙과 배움이기에, 이런 일들의 가치는 돈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126쪽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지 않으려고 하고, 남들을 배려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우리에게 진짜 완전한 자립을 이룰 능력이 있거나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혼자일 때 인간은 타인의 문제는커녕 자신의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다. 불완전하고 그래서 남에게 자연히 기대며 살아간다. 
-156쪽

나는 스스로를 지키는 힘인 자존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의 소시오미터 이론은 자존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에 잘 들어맞는다. 남이 나를 긍정적으로 봐준다고 인식하면 내가 그만큼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내가 자존감을 믿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긍정할 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167쪽

나는 글을 써도, 일로 사람을 만나도 나 자신의 사적인 감정과 색깔을 따로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가정주부는 사적인 삶과 공적인 능력을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251쪽

진화의 핵심에는 돌연변이가 있다. 어떤 일정한 계획과 방향을 두고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무수한 시도들이 폐기 처분되는 과정 중 소수의 몇 가지가 살아남아 의미가 된다. 그래서 의미는 돌아봐서 정한다. 
-260쪽


4. 감상평

서울대 출신. 전직 언론인. 유학. 그리고 미국 시골의 삶. 
소위 스펙 쩌는 사람이라... 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겠지만, 걱정될 것도 없겠구나 생각도 든다.
기자의 글이 오히려 건조해서 그런가... 감동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이메일 정기구독 서비스라는 게 아직도 유효한 수입모델인가 싶기도 하고. 
같이 읽은 은유의 글과 스펙이 완전 반대라... 더욱 비교가 된 글이기도 했다.


인문학당인가.. 어디선가 추천한 책이었는데... <몸의 일기>와 함께 둘다 핫한 책이긴 하지만 그닥 성찰적이진 않은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 은유 살면서 읽으면서 책 삶 기록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 은유 / 서해문집

1. 저자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나서 무척 감명 깊었다.

다시 찾아보니, 그때 여러 책 열심히 읽었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네.
역시 기록이 중요하다. 
그때 왜 이렇게 대충 써놨을꼬.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와 <글쓰기의 최전선>을 보면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대면강좌가 시작되자 마자 
'나도 작가다' 글쓰기 수업과 '나만의 특별한 말과 글' 강좌를 들었고,
'나만의 특별한 말과 글' 강의에서 은유 작가를 만났다. 
저자의 글쓰기 책이 아니라 저자의 에세이가 보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수유너머에서 공부했고, 읽다보니 서울여상을 졸업했다. 
굳이 대학을 가서 학벌세탁을 하지 않았고, 그대로 글쓰기 강사이자 글하청노동자로 살고 있다. 
나는 세탁한 사람인데. 

2. 목차 

저자의 말

1부. 여자라는 ‘본분’ :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
여자들의 저녁식사
딸이니까
김제동의 말
본분과 전혜린
때로 엄마로 산다는 것은
눈물 속으로 들어가봐
밥 안 하는 엄마
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사람들
미친년 널뛴다는 말
여가부에서 온 우편물
꽃수레의 명언 노트
구닥다리 모성관의 소유자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
엄마와 수박
군인 엄마의 인생 수업

2부. 존재라는 ‘물음’ :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나는 오해될 것이다
오래 고통받은 사람은 알 것이다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다
그림을 걸지 않는 미술관처럼
양껏 오래 살고 싶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 대
결을 맞추는 시간
길에서 쓰다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다
넓어져가는 소란을 위해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앵두와 물고기, 함께 있음의 존재론

3부. 사랑이라는 ‘의미’ :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사랑 절대로 하지 마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그대라는 대륙
그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4부. 일이라는 ‘가치’ : 박카스 한 병 딸까요?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게 낫다
꽃 시절은 짧고 삶은 예상보다 오래다
버둥거리는 노동절 전야
박카스 한 병 딸까요?
남의 집 귀한 자식
바늘방석 같은 사랑
나는 울타리를 넘고 싶었다
말하는 누드모델
구름의 파수병
세상의 모든 처음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게 왜 궁금한 거죠?
살림만 미워했다
저자가 뭐라고
절판 기념회를 축하해도 되나요?


3. 책 속에서

사는 일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굳이 삶을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사는 일이 힘에 부치고 싱숭생숭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글을 썼다. 오직 노릇과 역할로 한 사람을 정의하고 성과와 목표로 한 생애를 평가하는 가부장제 언어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몸에 돌아다니는 말들을 어디다 꺼내놓고 싶었다. 꺼내놓고 싶은 만큼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고유한 슬픔일지라도 언어화하는 순간 구차한 슬픔으로 일반화되는 게 싫었다. 우리가 입을 다무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던가. 말하고 싶음과 말할 수 없음, 말의 욕망과 말의 장애가 충돌하던 어느 봄날, 나는 이미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이 책은 서른다섯부터 마흔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의 기록이다. 모성을 수행하는 엄마이자 존재를 이행하는 자아라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삶의 조건 속에서 나는 분열했고, 분투했다.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자아가 있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아무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를 탈고유화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라고 엘렌 식수가 말했던가. (중략) 내 거친 생각에 빛과 물을 부어준 귀한 인연들, 같이 시를 읽고 글을 쓰고 말을 나눠준 도반들, 이 책에는 그들의 체온과 지분이 들어있음을 말하고 싶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지는 모든 존재들의 '탈고유화'의 여정 위에 이 책을 내려놓는다. 

-여기까지 저자의 말 중에서.
시와 철학서를 넘나드는 온갖 인용을 보면서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이 됐다. 마음고생도. 한편으로 너무 힘이 들어간 거 아냐, 하면서 읽는 동안 힘이 점점 빠지는 것도 보인다. 딸의 힘인지 모르겠을 정도로. 그렇다고 날이 무뎌졌다기 보다 익어가는 느낌이다. 
삶의 궤적이 비슷한 나보다 몇년 선배인데, 같은 나이대에 나보다 치열했다 싶다. 

나에게 엄마로 사는 건 인격이 물오르는 경험이 아니었다. 외려 내 안의 야만과 마주하는 기회였다. 

어쩌면 아이에게도 원초적인 불안이 있어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모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 불안. 성인이 되어 자기 한 몸 챙길 때까지는 이 세상 모든 아동들은 자기 유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지. 그러니 안쓰러운 어린 것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자주 힘에 부친다. 내심 잔인해진다. 이 분열적인 자아를 바라보아야 하기에 엄마로 사는 일은 쓸쓸하고 서러웁다. 

옆 사람 힘든 게 왜 안 보일까... 나중에 알고보니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 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은 퇴화한 것이다. 무심함이 무뚝뚝함, 남자다움으로 미화된 데다가 학교나 학원에서 안 가르쳐주니까 관 뚜껑 닫힐 때까지 모른다. 모르고 편하게 살다가 죽은 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는 여자들도 많다. 

세월이 흐르고 성폭행 피해 여성들을 인터뷰할 때 물었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가 무어라고 말해주면 가장 좋은지.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힘들었겠구나. 나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진실은 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듣는 데 있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 집집마다 당도해야 할 것은 가해자의 신상 명세가 아닌, 피해자의 들릴 권리가 담긴 서툰 말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보험회사 광고에 나오는 정상 가족의 판타지를 버리지 못하는 한, 엄마의 자리에서 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략) 원초적 모성으로서의 엄니, 신문이 조종하는 대로 사고하고, 광고에 나오는 대로 욕망하는 엄마, 사회적 모성으로서의 엄마. 어떤 개념을 걸어도 '엄마'는 문화적 산물이고,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차라리 양심거부를 할까?" 난 18개월을 감옥에서 보내는 병역거부가 '차라리'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며, 소신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그래도 감옥보다 군대가 낫지 않을까...
한국에서 엄마로 사는 일은 괴롭다. 과열 경쟁을 조장하는 사교육을 반대한다면서도 아이는 수학학원에 집어넣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아이는 군대에 가라고 한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타협의 기술은 늘어간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부끄럽다. 

-여기까지 1부 여자라는 '본분'

원래 이별한 사람은 문법에 맞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자본의 속도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나오는 진짜 노동자. "로마는 노예의 쇠사슬로 묶여 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고 말할 때의 그 노동자. 자본의 메커니즘에서 하나의 부속으로 쉼 없이 돌아가는 똘똘이표 나사였다. 

동정이든 차별이든 그 아래 깔린 근본 생각은 다르지 않다는 걸. 어떤 대상을 자기 삶의 반경에 없는 분리된 존재로 취급하는 것(고아는 불쌍하다), 한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특정한 면만 부각시켜 인격화 하는 것(장애인은 무능하다), 자신은 결코 되지 않을 이질적인 대상으로 상대를 보는 것(공부 안 하면 노숙인 된다). 하나같이 타자화하는 말들이다. 

-여기까지 2부 존재라는 '물음'

그렇다. 니체는 악행을 권한다. 속 좁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악행을 저지르는 게 낫다고 한다. 행위의 과정에서 문제를 떠뜨리고 해결해주고 다른 지평이 열리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은 노동의 결과물이 보존되고 과정의 수고로움이 기록된다. 존경과 동경을 받는다. 어떤 직업은 아니다. 노동의 성과가 사라지고 고충이 음소거된다. 

삶은 그 자체가 낭비다. 책 한권을 어렵사리 읽어도 돌아서면 내용을 까먹지 않던가. (중략) 사는 게 총체적 낭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는 살림만 미워했다. 살림이, 정확히 가사노동이 지겹고 하찮게 느껴져서 제발 집안일 안 하고 살길 간절히 염원했다. 

-여기까지는 4부 일이라는 '가치'


4. 한줄평

한겨레에 7년동안 연재하고 작년 마지막 글을 썼다고 SNS에서 봤다. 
어떤 글은 완전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떤 글은 속이 시원한 사이다였고, 어떤 글은 어려웠다. 나와 비슷하다 느끼다가도 아니라고 하는 탈고유화의 여정의 책이다. 
이런 글이 많아져야 한다.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쓰기부터 해야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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