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가방속의 페미니즘 살면서 읽으면서 책 삶 기록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추혜인 지음 / 심플라이프

부제: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1. 지은이 

추혜인 : 은평구 살림의원 의사. 서울대 출신, 공대에서 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 중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들 듣고 진로변경, 이듬해 의대로 다시 입학.
(서울대 애들은 며칠전에 내려가서 다시 수능 보고 또 서울대 입학도 잘하더라...)

2. 목차

프롤로그

1장 따릉이 타는 동네 주치의
- 그가 그녀가 되는 곳
- 스트레스 탓이라는 뻔한 말
- 따릉이 타는 우리 동네 히어로
- 발톱을 깎고 귀지를 파고
- 그러는 나이가 있어요
- 정말 페미니즘 운동을 위한다면
- 새로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
- 언젠가는 찾아오는 빚쟁이
- 팔짱을 끼지 않는 의사들
- 벌거벗은 주치의
- 밤 11시 45분에 걸려오는 전화
- 할머니의 반지

2장 페미니스트 의사 되기, 쉽지 않아
- 나는 남자라서 의사 못 되잖아!
- 우리가 만든 분란
- 공대생이 의대생이 된 사연
- 관계를 여는 버튼
- 보호자인가 가해자인가
- 경찰서에 가다
- 법원에 출두하다
- 자기는 왜 결혼 안 해?
- 밤길이 두렵지 않을 때
- 싸움의 기술
- 통증 차별 대우
-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3장 그녀들이 나에게
- 과호흡증후군과 첫 숨의 기억
- 독거노인 할머니와 보살님
- 기저귀를 갈다
- 엄마의 암 진단 대소동
- 약이 싸구려라 그래
- 화장실 이용 순서
- 잘 키워오셨습니다
- 너나 많이 느끼세요
- 만성 소화불량, ‘안심’을 처방하다
- 이유만 알아도 견딜 수 있다
- 엄마가 되는 그녀들에게
- 재개발, 기억을 허물다

4장 약이 아닌 관계로 치료하다
- 담배 연기의 무게
-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의원
- 목구멍이 닮았다
- 진짜 동네
- 혈관을 잃고 생명을 얻다
- 사망진단서를 쓰며
- 아이 키워본 적 없죠?
- 갑상선암과 방사선
- 의대에서 배우지 못한 치료법
- 지역으로 열린 시설
- 무엇을 배우든 써먹는다
- 주민들과 함께하는 왕진

5장 우리에겐 주치의가 필요하다
- 제가 꿈꾸는 병원은요
- 통역자로 일하는 중
- 건강검진은 마음 편하게
- 코딱지와 면역 똘레랑스
-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듣기
- 팀 주치의가 필요해
- VIP 신드롬
- 불만이 많은 환자들
- 비염이 요실금을 부르기까지
- 자격증과 면허증의 차이
- 감기밖에 모르는 의사

- 에필로그
- 부록 주치의를 갖고 싶다면

3. 책속에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나사를 방문했던 날의 일화이다. 대통령이 나사에서 마주친 청소부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 청소부가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우주인을 우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나는 우리동네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34쪽

어떤 남자가 부인에게 무통분만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분개했다. (중략)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는 그 절정의, 환희의 순간이 현대 의료 기술로 오염되는 것 같다나 뭐라나. 무통주사가 아이의 탄생이라는 기적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다나 뭐라나.(중략)
산모가 거부할 수는 있다. 똑같은 이유로 거부하는 산모도 있다. 그래도 그건 본인이 감내하겠다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 감히 남편이 반대할 수는 없는 문제다.(중략)
우리는 언니의 입원실에 모여 앉아 그 남편 욕을 했다. 그런 자식은 마취도 안 하고 사랑니를 뽑아버려야 한다고 했다가, 마취 없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여성들이 겪어내야 하는 힘든 순간에 대해서만 어찌나 '자연화'하려는 시도들이 넘쳐나는지. 임신, 출산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둥, 생리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둥, 심지어 여자는 자연미인이 최고라는 둥...!
-191쪽

생식과 관련된 사망이 줄어들면서 너무 많은 것들이 '책임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사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아도 장애아는 태어날 수 있고, 누구도 잘못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플 수 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사망하는 태아와 산모가 생긴다. 하지만 이젠 그 모든 것들이 엄마들 혹은 의사들의 책임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모성이 본능이라고 여겨지던 시대를 겨우 벗어나나 했더니, 이제는 책임과 의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많은 엄마들은 비난받거나 비난하거나, 기로에 서 있다. 응급실을 찾는 불안하고 예민한 산모를 보면서, 소아 응급실을 찾는 앙칼진 목소리의 엄마들을 보면서, 근거 중심의 의학을 믿지 않고 안아키를 찾아 헤매는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그녀들의 위태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206쪽

나의 할머니도 알츠하이머 치매로 돌아가셨다. (중략) 광고지를 읽는 할머니의 모습을 본 나는, 큼직한 글씨로 할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노래 가사나 김삿갓 동화 등을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클리어 파일에 꽂아 책으로 만들어드렸다. 제일 첫 페이지에는 나와 가족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 자녀와 손주들의 이름을 빼곡히 썼다. 할머니께 이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비혼이고 자녀가 없다. 치매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나 같은 손녀는 내게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사랑하는 우리 동네가 재개발되어 싹 다 갈아엎어지지 않도록, 골목과 가게들을 지켜야지.
-211쪽

면역 관용에 대해서는 다른 재미있는 의견도 있다. 오스트리아 의사인 비스친거 박사는 콧구멍을 후벼 코딱지를 먹는 아이들이 면역력이 더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내용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코털에 걸러진 여러가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알레르기 항원을 먹어서 장을 통해 흡수하게 되면, 면역관용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중략)
코털에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이 걸려서 붙고 코 점막의 점액질까지 더해져 생기는 코딱지는, 인간이 생존해 있는 이상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코 점막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잘 파느냐가 관건이다.(실제로 코를 후비는 과정에서 코 점막에 무조건 상처가 생기기 때문에,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코딱지를 일부러 파 먹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299쪽

4. 느낀점

은평구에 살 때 친구들이 살림의원을 가라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이라면 찾아다니고도 남았을 테지만, 그때 나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버스 몇 정거장의 병원을 다닐 여력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그런 나를 공명해오는 책. 
많은 은평구의 친구들과 활동가들과 내 친구들의 떠오른다. 나의 여친들아 잘 지내고 있니! 친구끼리 같이 살자던 꿈을 우리는 이루지 못했지만, 해낸 친구들이 있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허튼 꿈을 꾼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우리 20대는 서툴고 치기 넘치고 순진했으나 허황된 꿈은 아니었어. 물론 의사도 아니고, 20대부터 당당한 페미니스트도 아니었으나 마을에 의사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또 알 나이가 되지 않았겠니! 
이런 의사가, 병원이, 또 여성들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 좋겠다.

5. 한줄평

잘한다 잘한다!


덧. 읽은 데 딸아이가 옆에서 뭐 읽냐고 해서 마침 코딱지 부분을 읽고 있어서 읽어줬다. 둘이 코딱지 파 먹는 아이들 본 이야기 하다가, 사실 코딱지를 파서 휴지에 싸서 버리는 고상한 네 녀석이 제일 안 좋은 거다, 그다음이 코딱지 파서 먹는 거고, 제일 좋은 건 코딱지 안 파는 거, 라고 놀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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