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정여울 / 김영사

1. 정여울

글 잘쓰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심리학 책이어서 같은 사람인가 잠시 생각. 
같은 인물이 맞았다. 심지어 스크랩한 글도 실려 있었다.
따라 쓰기 하고 싶은 작가.

2. 목차 

프롤로그
1.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2.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당신까지도
3. 마음의 안부를 물을 시간이 필요하다
4. 슬픔에 빠진 나를 가장 따스하게 안아주기
에필로그

3. 책 속에서

나 또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놓쳐버린 생의 모든 아름다움을 언젠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되찾을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야 할 일에 집착하는 한, 내가 꿈꾸는 삶이 아닌 남들이 부추기는 삶을 향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놓쳐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도 없고, 행복해야 할 의무에 충실할 수도 없으며, 그 꿈은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 것이니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자는 습관화된 체념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 
-24쪽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그림자 노동의 가짓수는 늘어나며, 현대인은 보수도 보람도 없는 온갖 잡일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라 창조적인 사유를 할 겨를이 없어진다. 
-39쪽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힘들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라는 뿌리 깊은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칭찬해주는 부모의 사랑 앞에서 아이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45쪽

두려움을 고백하는 일,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일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최고의 지성을 갖춘 이에게만 허락된 눈부신 축복이다.
-55쪽

얼마 전에는 학생들에게 내 고민을 말했다. ‘다정하고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 할지 ‘혹독하고 냉철한 교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고. 사실 따뜻하고 듣기 좋은 말, 칭찬하고 다독이는 말을 하기가 훨씬 쉽다고. 하지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새끼를 벼랑으로 모는 어미새처럼 그렇게 여러분을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야 할 때가 있다고. 벼랑 위에서 떨어지는 순간은 무섭지만, 여러분에게는 분명 날개가 있으므로 그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 된다고. 가끔은 내가 제 새끼를 벼랑으로 밀어 버리는 어미새처럼 여러분에게 가슴 아픈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네 안의 날개’를 반드시 펼치게 하려는 내 의지이지 결코 여러분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그 순간 학생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상처와 가까워지며, 비로소 상처를 극복하고 마침내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를 마음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 상처 입어 피눈물 흘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해자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흉터마다 마침내 그 흉터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끝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 또한 어루만지는 치유자가 되고 싶다.
-156쪽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학생의 어깨를 말없이 안아주며 깨달았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글쓰기의 전략이 아니라 아픔을 털어놓을 사람임을. 아이들은 단지 글쓰기 선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마음을 다해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대일 멘토링을 통해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변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수업을 더 잘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초조해하던 내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160쪽

몸이 불편한 딸이 이 세상에 발붙일 자리를 만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고 믿었던 억척스러운 전사 같았던 어머니. 눈오는 날에는 눈위에 연탄재를 뿌리고, 비 오는 날에는 한 손으로 딸을 업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든 채 늘 딸의 등굣길을 함께해 주시던 어머니.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험 자체를 거절했던 학교들도 많았다고 한다. 
(중략)
그런 가없는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장영희의 투명하면서도 섬세한 글쓰기는 태어났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삶에는 사랑이라는 눈부신 오아시스가 있다. 그 사랑이라는 오아시스 덕분에, 우리의 삶은 끝내 견딜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지옥이 된다. 그 어떤 고통이 우리의 삶을 할퀼지라도, 고통은 언젠가 사라지고, 사랑은 끝내 살아남는다.
-163쪽

당신의 아픔을 극적으로 요약하는 핵심문장은 무엇인가? 그 문장을 종이 위에 또박또박 써 내려가보자. 그것이 당신 안의 트라우마를 그리는 첫 번째 로드맵이 될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내 안의 뼈아픈 핵심문장을 찾아내곤 망연자실했다. “나는 이 상처를 결코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 안의 핵심문장이었다. ‘이 상처’의 개인적인 내용보다 더 아픈 것은, 그 상처로 인해 내가 느낀 깊은 절망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처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 상처에 곧바로 대응하는 또 다른 치유의 문장이 떠올랐다. “너는 그 상처로 무너지지 않아. 너는 지금까지 정말로 잘 견뎌왔어.”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어느새 ‘상처 때문에 무력해진 사람’이 아니라 ‘항상 그 상처와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가 되는 느낌이었다. 
-178쪽

나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치유가가 되고 싶다.
-198쪽

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는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에서 현대인을 '저마다 너무 작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존재'로 비유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신발, 즉 자신을 옥죄고 괴롭히는 작은 신발을 신은 채로 걷는다는 것은 인생을 지나치게 편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얽매이는 것, 나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부정적인 자기인식. 이 모든 자기 규정이 우리 영혼의 확장을 가로막는 내부의 적이 아닐까. 
(중략)
때로는 자존심이라는 작은 신발을 신음으로써 콤플렉스와 마주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때로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라는 작은 신발을 신음으로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보다는 숨기는 데 급급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208쪽

우리는 흔히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은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어기제 중 하나인 이유도 '책임=스트레스'라는 우리 안의 편견 때문이다. 
그런데 책임과 애정이 결합하면 놀라운 효과가 나타난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대상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더욱 강인해지고 행복해진다. 
(중략)
애정과 책임감이 결합했을 때, 인간은 '이런 일은 못해'라는 익숙한 방어기제를 부수고 '이런 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때로는 자기 안의 익숙한 방어기제를 깨뜨리는 것이 자기발견과 자아성장에 훨씬 큰 도움을 주는 것이다.
-233쪽

우리의 에고(Ego)는 우리 자신만이 스스로 쌓아 올릴 수 있는 성벽이다. 누구도 내가 먼저 에고의 성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제멋대로 이 에고의 성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에고가 약해질 때 우리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온갖 감정의 화살과 대포가 에고의 성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당신의 자부심을 찢어발기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짓밟는 모든 외부의 힘들을 직시해야 한다. 무섭고 두려워서 피하고 싶겠지만 계속 도망치기만 한다면 그 에고의 적들은 당신의 에고라는 성벽뿐 아니라 당신의 진정한 자기(Self)의 영역까지 침식해 들어올 것이다.

당신의 에고를 무너뜨려도 좋은 것은 오직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들이다. 사랑으로 인해 당신의 자아가 무장해제된다면 그것은 기쁜 깨어짐이다. 진실한 우정으로 인해 당신의 자아가 흔들린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방황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고, 치유할 모든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그 에너지를 발굴하고, 활성화시키고, 마침내 자기극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지혜야말로 자기치유의 심리학이다.

그 무엇도 당신을 작아지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세상 무엇도 당신의 자아를 움츠러들게, 짓누르게, 빛 바래게 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저항하라.
-238쪽

생각해보니 정말 새로운 도전을 해본 적이 없었다. 부모가 둘러준 울타리 바깥을 나간 적 없었던 나, 한 번도 새로운 삶에 도전해보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마침내 작가가 되는 길을 선택할 때, 내 안의 부모의 시선이라는 용과 싸워야 했다. 
-244쪽 에필로그 중에서


4. 감상

오랜 기간 꼼꼼히 읽었다. 쉽게 넘어갈 것 같으면서도 쉽게 넘기지 않으려 했다. 꼭꼭 씹어먹으려고.
그래도 정여울의 글은 더 볼 것 같다.
특히 작가로서 글쓰기지도를 직업으로 삼은 나에게 부분부분 책임감?마저 느끼게 했다.
나를, 나의 상황을, 나의 주변을 통째로 위로하고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고 느끼게 했다.
억척 같은 장영희의 엄마가 될지, 맞써 싸울 용이 될지 교육관을 생각하게도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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